사색의 산책/삶의 아름다움

평등에 대하여

Digital Nomad 433 2023. 11. 23. 15:31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우리인류에 있어서 진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인류는 프랑스 대혁명이후 평등을 주제로 한 혁명이 다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등이 완전히 실현되었는지는 의문이 있습니다.

 

평등에 대하여 고찰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 질 수 있으며 각각의 부류는 어떻게 평등을 실천하고 있는지를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은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그에 따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알고 있고 또한 실제로 믿어 의심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구에서도 민주주의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왕, 봉건영주, 기사, 농민 등 여러 계층의 계급이 존재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임금, 양반, 평민, 노예 등에 세부적으로도 사농공상의 직업상 귀천이 있었지만 민주주의 사회의 도입이후 그러한 계급과 직업상 귀천의 의미는 이미 상실된 지 오래 전의 일이라 치부합니다. 아니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과거 우리조상들이 겪었던 그러한 계급이 아닌 또 다른 의미의 계급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그러한 계급이 출생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의 노력에 의하여 성취 가능한 것인지를 자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은 90%의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10%의 엘리트들이 이끌어가고 있다는 어느 미국대통령의 말을 인용치 않더라도 고등학교시절 대학입시를 위하여 공부하던 영어 책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면 "사람들은 평상시에 서로 평등하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없다, 단지 선거에서만 사람들이 평등할 뿐이다." 라고 하면서 그 예로는 "만일 당신이 중요한 뇌수술을 받고자 할 때 어느 의사라도 평등하니까 아무 의사에게 가서 뇌수술을 받겠는가?" 이 물음에 어느 사람이 자신 있게 인간은 평등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대학교 진학문제에서도 모든 대학의 교수들이 평등하므로 아무 대학이라도 가겠습니까? 민주주의의 대명사로 이야기되는 미국에서도 매년 대학의 과별 순위발표를 하고 있고 현재도 엘리트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계급은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결론부터 말한다면 물론 존재합니다. 금세기 초에 부의 축적과정에서는 기존의 부를 바탕으로 하는 귀족출신들이 우세했을지도 모르지만, 신흥재벌의 출현이후 그들의 부가 축적되고 이제는 그들의 일족이 옛날의 양반 또는 봉건영주의 계급처럼 세습되고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 대혁명도 시민계급을 앞에 세운 신흥자산가들의 항세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음) 물론 일부가 엘리트 집단으로의 진입은 가능하겠지만 옛날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계기가 있어야 하며 비록 계급을 구분하는 평가의 기준은 변경되더라도 사람은 항상 편을 가르고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익숙합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경쟁체제가 인정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평등이 실현되기 어렵고 단지 가시적인 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여 평등의 일부분을 메우려 하고 있을 뿐이며 그렇다고 평등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평등의 실체를 살펴보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실질적으로 평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민주주의에서 엘리트 직업인 교수나, 일반 육체노동자나 보수가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이기는 하나 여기에도 국가를 대표하는 체육인, 상부권력층에는 물론 특권이 주어지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상징적 평등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문제점은 모두 평등하므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동기부여가 주어지지 않는데 왜냐하면 학업에 정진하여 교수가 된다 할지라도 학업기간동안 보수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일반 노동자와 급여차이도 없는데 굳이 애써서 공부 할 필요가 있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산주의 국가가 대부분 저 소득국가이고 구소련을 비롯한 대다수의 동구공산주의 국가가 붕괴된 사유도 근본이 이점에 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모든 인간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적어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동일보수에 대하여 배가의 노력을 하려 하지 않고 현대와 같이 물질문명이 주도하는 세계에서는 생산성 저하로 나타나 결국은 진화론적 의미에서 소멸되거나(동구 및 구소련), 변증법적 의미에서 발전적으로 수정·개량되는(중국)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결국은 Motivation의 결여로 평등의 의미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두 체제 모두 단일적 성격을 띠지 못하고 중복 또는 혼용의 형태로 민주주의에서는 사회보장체제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자유시장경제의 도입으로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회에서 인간이 평등하지 못하다는 이야기의 종점은 어디인가 인간은 평등하지 못하다는 것이 현실임에도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교육하고 그것을 믿게끔 이 사회가 유도하는데 문제점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존엄성에 있어서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그러나 평상시 이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보다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치 또는 그 사람의 권위에 더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회는 평등한 인간을 평등하게 취급하지 만인을 평등하게 취급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이 사회는 모든 이를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만약 이 사회가 모두 평등하다면 선택이라는 단어는 발생치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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