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이소로꾸(山本 五十六)은 이름부터가 특이합니다. 오십육이란 이름은 그의 아버지가 오십육 세에 낳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제독은 1904년 해군병학교 제32기생으로 입대해서 러일전쟁에 참여했는데 여기서 손가락 두 개를 잃었으며 1916년 해군대학을 졸업한 후, 주미대사관(駐美大使館) 무관, 항공전대 사령관을 거치고, 1930년 항공본부 기술부장. 1935년 항공본부장이 되면서 공격용 항공기의 개발과 항공부대편제에 역점을 두었고, 1936년 해군차관이 되었을 때 2차 대전의 기반이 되는 독 ·이 ·일 삼국동맹에 반대하였습니다. 그 이면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를 한 경력이 있고 두 번에 걸친 미국주재 무관생활과 연구로 누구보다 미국의 저력을 잘 알고 있었으며, 연합함대 사령관 시절 기함이던 무사시, 야마또와 같은 거함거포주의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져 앞으로의 해전은 대포가 아니라 항공기에 의해서 승패가 좌우될 거라 예상한 제독은 해군 항공본부장에서 제로센이라는 항공모함 탑재기를 개발하는 등 합리적 판단이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이것은 제 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프린스오브웨일즈, 야마또, 무사시, 레펄스 등 거대전함이 공중공격에 무력하게 무너진 것으로 확실히 증명되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개전 초 소장파 장교들은 개전을 반대하는 야마모토를 암살하려고 하자 이 암살위기를 피하기 위하여 연합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일단 전쟁이 시작되자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습니다.
제독은 미국과의 개전을 반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째 미국은 해안선이 태평양, 대서양 두 대양에 걸쳐 길게 형성되어 있어 때문에 해안선을 봉쇄 할 수 없으며,
둘 째 해안선을 봉쇄하더라도 미국 내 자원이 풍부하여 봉쇄의 효과가 없으며,
세 째 미국의 거대한 민간산업이 전시체제로 전환될 경우 그 물량공세를 감당할 수 없다.
이것은 미국과 일본의 현실의 차이점을 합리적으로 정확히 판단한 것으로 제독은 시간을 예측하여 6개월 또는 1년은 가능하지만 그 이후는 장담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것도 진주만을 초기에 섬멸한다는 조건하에서 그 기간의 보장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때 총력을 기울이는 진주만 공격계획을 수립하게 되는데 진주만 작전을 담당하는 사람이 제독의 직속참모가 아니라 제 1 항공전대 소속의 그 유명한 가미가제 특공대의 아버지인 오오니시 다끼지로오 소장입니다. 그래서 항공력을 중심으로 하는 공격계획이 수립된 것입니다.
진주만 침공에서도 미국인에 대한 제독의 판단은 정확하여 선전포고 후 공격을 주장하였지만 노무라 대사가 본국으로부터 암호문으로 날아온 선전포고문을 타이핑하는 속도가 느려 공격 1시간 후에 미 국무장관이던 헐에게 전달되어 선전포고 이전에 공격을 당했다는 억울함을 미국인들에서 남겨주어 '진주만을 기억하자'라는 구호를 남겨주고 오히려 미국인의 사기를 올려주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이재등용 면에서도 실질적인 측면을 강조한 합리적인 면이 돋보입니다. 그 에로써 진주만 작전에서 일본해군의 엘리트 코스인 해군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두 사람이 등장하게 되는데 작전을 담당한 오오니시 다끼지로오 소장과 공격을 총괄한 나구모 제독입니다. 그런데 전자인 오오니시 소장의 경우 전함위주의 공격이 아닌 항공기 위주의 공격계획과 해저가 얕은 진주만에 대비한 특수 어뢰의 제작으로 훌륭하게 성공하였지만 나구모 제독의 등용은 실패라고 할 수 있는데 야마모토 제독은 매우 추진력이 강한 사람임에도 나구모 제독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진주만에서도 3차 공격을 감행해 진주만의 연료탱크, 보수장비, 잠수함대피소 등을 공격했으면 더 큰 전과와 시간을 얻을 수 있음에도 3차 공격을 하지 않았고 진주만에는 항공모함이 훈련을 위하여 출동 중이라 한 척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파괴된 전함을 제하고 전쟁을 하려니, 항공모함과 항공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일본이 미국에게 향후 해전은 항공전이라는 것을 무의식중에 가르쳐 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제독의 죽음은 항상 합리적으로 현장을 살피고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성격의 소유자인 제독이 전선시찰과정에서 미리부터 일본 해군의 암호해독능력이 있던 미국해군에서 제독이 섬으로 시찰을 나간다는 암호를 해독하고 섬 이름을 모르는 상황에서 예상되는 섬에 물이 부족하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시 일본 해군이 그 섬에 물이 부족하다는 암호전문을 해독한 후 전선시찰의 정확한 지점을 알았고 미군기가 공중에서 2개의 편대로 기다리고 있다 제 1편대가 제독의 호위기를 유도한 후에 제 2편대가 제독이 탑승한 수송기를 요격을 했고 제독은 추락 전 이미 기총사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죽음에 대해서는 종전 시까지 생존했다면 반드시 말레이반도의 호랑이로 여겨지던 야마시다 도모유끼 장군과 같이 전범으로 치욕의 최후를 마치거나 오오니시 다끼지로오 장군처럼 자살해야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사후에 제독은 원수로 진급하여 국장으로 장례가 성대히 치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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