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젠하워는 일곱 아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장군의 아버지는 크림 공장에서 일했고, 집안 형편은 궁핍해서 아이젠하워와 그의 형제들은 어릴 적부터 심한 노동을 해야 했고, 이로 인하여 강한 신앙심과 형제간의 우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1909년 아빌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형의 대학 학비를 대주기 위해 1년간 일을 하다가 웨스트포인트에 있는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으며 미식축구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으나 2학년 때 무릎을 다쳐 미식축구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고, 1915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할 때 총 졸업생 164명 중 그는 학과(學課)로는 61등, 기율(紀律)로는 125등의 좋지 않은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이것은 장군이 군인으로서의 능력은 그리 높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기갑훈련중대의 지휘를 맡아 대위로 승진했고, 소령으로 훗날 전차대의 명장으로 알려진 조지 패튼 장군과 함께 1933년 육군 참모총장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부관이 되었으며, 2년 뒤 맥아더장군의 부관으로 필리핀으로 부임하여 필리핀 군대의 재건을 지원했고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맥아더장군의 부관으로 계속 남기보다는 복귀를 원한 장군은 미국으로 돌아가는데 그 때 필리핀 정부의 무공훈장을 받았으며 중령으로 승진했습니다. 철저한 군인이었던 맥아더와는 달리 그는 군인으로서 보다는 인간적인 면이 더 뛰어났으므로 맥아더 장군과의 서로 장단점 보완이 가능하여 맥아더 장군의 부관으로 장기간 근무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41년 12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게 되자 참모총장이던 마셜장군은 아이젠하워를 워싱턴에 있는 육군 작전 참모부로 배속시켰으며, 그는 이곳에서 연합군의 유럽 침공 작전계획을 수립했고, 1942년 6월 마셜은 366명의 고위 장성 중 아이젠하워를 유럽 주둔 미군사령관으로 선택했습니다. 천재적인 맥아더 장군의 부관이라는 비교적 음지에서 오랫동안 군 생활을 해왔던 아이젠하워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고속승진을 거듭했으며 그것도 영관급 이상의 고위간부로서 아래를 보면 하늘의 별따기라는 장군 승진을 누워서 떡먹듯이 합니다.
1941년 3월 대령
1941년 9월 준장
1942년 3월 소장
1942년 7월 중장
1944년 2월 대장
1944년 12월 원수
1953년 미합중국 대통령
이렇게 고속 승진에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이르게 된 데에는 그가 군사적 지식을 잘 알기 보다는 조직운영에 재능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설득하고, 중재하고, 친절을 발휘하는 덕장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친밀감과 겸손함,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낙천성으로 인해 다양한 문화적·사회적 배경과 민족성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신임과 호감을 얻었고 이것은 사람들로부터 장군이 아이크라는 애칭으로 불렸다는 점에서 입증이 되며 남과 공동작전을 수행하여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연합군 총지휘관으로 그를 등용하기 위해서 그에 걸 맞는 계급을 수여하기 위하여 고속승진이 이루어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적어도 연합군의 총사령관을 취임하기 위하여 영국의 사령관인 몽고메리 장군과 동급 또는 상위의 계급을 가지고 있어야 통솔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즉 연합군의 지휘관은 다른 문화와 전통을 가진 집단을 하나로 어우르고 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의 재능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며, 이런 부분은 많은 형제가 있는 집안에서 성장하고 또 형의 학비를 대기 위해 사관학교 입학 전 일을 해야 했던 장군의 성장과정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장군은 주로 연합군의 협동작전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는데 행한 주요 공동작전은 연합군의 프랑스령 북아프리카 침공 작전인 횃불작전(Operation Torch)과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예로 들 수 있는데 횃불작전에서 나치 독일과 협력한 바 있던 프랑스 제독 장 프랑수아 다를랑과 공동작전을 했고, 더버 해협을 횡단하여 프랑스로 진격하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자존심 강하고 까다로운 파트너인 몽고메리 장군과 협동작전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젠하워 장군의 타고난 성품 때문일 것입니다.
두 작전 모두 독일에 협력한 바 있어 다들 꺼리는 다를랑 제독이나, 미국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자존심 강하고 까다로운 몽고메리 장군과 같은 사람들과의 협동작전으로 연합군 지휘관은 이렇듯 지휘관이라기보다는 회의체의 의장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역할수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연방으로 구성된 미합중국의 대통령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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